바이오산업 역사

본 페이지를 페이스북 트위터 블로그 URL공유

우리나라에 생명공학이 처음 들어온 것은 1970년대 중반 이후 서구에서 관련 분야를 공부한 학자들이 귀국하면서이다. 이들이 신문, 방송 등 언론을 통해 서구 선진 국가에서 각광받기 시작한 유전공학을 소개하기 시작했고, 언론들도 해외 동향을 통해 유전공학기술의 혁명적 발전과 미래에 대해 앞다퉈 다루기 시작하면서 개념적 수준의 이해가 조금씩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1982년은 국내 생명공학의 역사가 촉발되는 중요한 해였다. 기업체를 중심으로 한 한국유전공학연구조합과 학자들이 주축이 된 한국유전공학학술 협의회가 출범한 것이다. 곧이어 유전공학육성법 제정 작업이 추진되었고, 이 법을 통해 정부의 유전공학에 대한 육성 정책 수립과 민간의 참여와 투자를 유도할 수 있는 연구개발 투자지원의 법적 근거도 마련하게 되었다.

1982년 3월 4일 한국유전공학연구조합의 출범을 알리는 창립총회가 열렸다.
초대 이사장으로 정주영, 전경련 회장이 선임되고 ’82년도 사업계획 및 예산안 심의.
임원선임 등이 이루어졌다. 개회사를 낭독하고 있는 정주영 이사장의 모습이 보인다.

1980년대 우리나라 생명공학은 학문 차원의 기초적 연구개발 바탕이 없는 가운데에서 생명공학의 산업적 활용, 산업화라는 측면이 강조되고 이를 활성화하는 산업의 육성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과기처 중심의 정부 생명공학 연구개발 지원 사업은 산업계와 학계가 공동으로 협력할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되어 초보적이기는 하지만 생명공학 산업화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학계 또한 산업화 중심의 공동 연구개발 과제들을 통해 경험과 지식을 꾸준히 축적해 나갔다.

1984년 1월 31일 전경련회관 중회의실에서 유전공학육성법 시행령 공청회가 열렸다.한국유전공학연구조합과 한국유전공학학술협의회가 공동주최하였으며, 민정당의 정석모 정책위원장과 이상희 의원이 각각 기조연설과 법제정 배경 설명을 하고,한문희 박사 등 9명의 전문가들이 의견을 발표했다.

1990년대에는 세계 생명공학계가 인간의 유전자 정보에 관심을 돌리게 되는 큰 변화가 있었다. 인간게놈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 이는 1988년까지 서구에서 그간의 생물학을 중심으로 하는 유전공학이 그 산업적 성취에 한계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한 시도에서 시작되었다.

1991년 11월 4일 한국생물산업협회가 창립되었다. 연구개발로 획득한 신기술이나 지식을 산업화하여 유전공학 분야를 보다 활성화하기 위해 조완규 당시 유전공학학술협의회 회장이 한국유전공학연구조합 허영섭 이사장에게 제안하여 힘을 모아 설립하게 되었다.

1990년대 비롯한 생명공학 선진 국가들을 중심으로 인간게놈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이 알려지면서, IT산업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던 벤처 붐이 BT로 옮아가며 바이오벤처 붐이 일기 시작되었다.

1995년 4월 15일. 한국유전공학연구조합이 한국생명공학연구조합으로 명칭을 변경한 후 현판식을 갖는 모습 생물체 이용기술의 확대발전을 반영하기 위해 <유전공학육성법>이 <생명공학육성법>으로 개정되어 1994년 12월 정기국회를 통과했고, 이에 발맞춰 연구 조합도 명칭을 변경하게 되었다.

배경은 달랐지만 이러한 추세는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특히 1998년 들어선 새 정부가 IMF를 극복하는 한 방안으로서 벤처에 대한 투자 지원에 앞장섰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문적 기술과 연구 경험을 필요로 하는 BT벤처에 있어 대학 또는 연구소의 전문가들이 바이오벤처 창업으로 몰리면서 우리나라 생명공학은 그 이전까지의 제약, 식품 산업체 중심에서 바이오벤처의 시대로 진화하게 되었다.

2000년 들면서 동물복제의 성공과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인간 DNA의 염기서열이 밝혀지는 등 바이오기술이 급진전하고, 바이오와 IT기술이 빠르게 접목되면서 바이오의 영역은 날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었다. 또한 바이오의 상용기술이 속속 출현하면서 세계 바이오산업은 계량적인 추정이 힘들 정도로 큰 폭으로 성장하여, 시장규모만도 2000년 약 540억달러에서 2003년 740억달러, 2008년 1,250억달러, 2013년 2,100억달러로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고 있었다. 이 같은 바이오산업의 성장 전망은 전 세계적으로 바이오벤처 붐을 촉진, 벤처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는 이미 상당수 바이오 기업들이 상장, 바이오 기업군을 형성하고 있었고, 유럽·일본 등 선진국으로 그 바람이 확산되고 있었다. 이러한 세계적 추세와 맞물려 우리나라도 2000년 들어 바이오산업이 IT와 함께 미래 핵심산업으로 부상하며 붐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그간 국내 벤처 붐을 몰고 왔던 IT관련 벤처산업이 무분별한 창업과 과대평가를 조장하여 ‘벤처거품론’으로 이어지면서 ‘포스트 IT’의 대표주자로서 BT 관련 벤처비즈니스가 크게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2000년 7월 14일 한국바이오벤처협회 창립총회가 열렸다. 관련인사 2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취지문 발표와 한문희 초대회장의 취임사가 있었다. 이어 조완규 한국생물산업협회 회장. 김영호 산업부 장관 등 각계 대표들의 축사. 조동성 서울대학교 교수의 특별강연 등의 행사로 진행되었다.

우리나라 바이오의 발전과정은 80년대의 초기 산업화 과정, 90년대의 연구개발 기반 확충과 산업화의 활성화, 2000년대의 바이오벤처 중심의 산업 확산 등 10년 주기로 큰 변화를 거치면서 성장해왔다. 기초적 학문의 기반을 바탕으로 산업화로 이행한 선진국들의 발전 순서와는 달랐고, 여러 가지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세계 수준과의 격차를 꾸준히 따라 잡으면서 착실하게 성장해 올 수 있었다.

2005년 10월 26일 한국바이오벤처협회는 ‘상장 BIO기업 공동 IR’ 행사를 개최해.바이오산업의 비전을 제시하고 바이오기업에 대한 투자자의 이해를 높이고자 했다. 이 행사는 이후 매년 진행됐고, 특히 2006년 11월 17일에는 국내를 벗어나 홍콩에서 IR 행사를 가지기도 했다.

2006년 2월 23일 한국바이오벤처협회가 산업자원부와 공동으로 개최한
‘바이오기업 기술이전설명회‘. 한국기술거래소가 행사를 주관했다.

2007년부터 정부의 제2차 생명공학육성기본계획이 시작되면서 날로 다양화되고 있는 바이오관련 정부정책과 부처간 역할이 재정비되고, 2008년 초에는 새 정부가 들어서고 정부조직 개편에 따른 산하 조직 및 관련 단체들의 통폐합 분위기가 강해지면서 국내 바이오 산업계 외부 환경이 변화하였다. 2008년 11월 28일 임피리얼 팰리스호텔에서는 지식경제부 장관을 비롯한 산학연 대표자 및 관계자 300여명이 모인 가운데 한국바이오협회의 통합 출범식이 거행되었다. 그간 별개로 운영되어온 한국생명공학연구조합, 한국바이오산업협회, 한국바이오벤처협회가 한 몸이 되어 새로 출발하면서 바이오산업 역사에 큰 획을 긋게 된 것이다. 이날의 통합 출범은 바이오산업 업종 대표단체로서 규모와 위상을 갖추고 대정부 창구의 일원화를 통해 교섭력을 제고하며, 단체 중복가입 등 기업들의 부담을 줄이고, 업계의 의견 수렴과 반영에 있어 효율을 높이게 될 것이라는 의미에서 국내 바이오산업의 발전과 도약에 대한 큰 기대를 모으게 했으며, 이후 바이오산업은 그린·산업·의약바이오분야로 진화를 계속해오고 있으며, 최근에는 ICT가 융합된 헬스케어 서비스분야까지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2008년 11월 28일 세 개의 단체가 통합된 한국바이오협회가 출범하였다.